11/04/2010

일본 아이돌 모닝구무스메의 성장과 변화 과정 - 모닝구무스메 몰락과 인기 하락에 대해서

일본의 걸그룹 모닝구무스메는 일본의 국민 아이돌이라 불리기도 하지만, 전성기의 인기에는 미치지 못한다.

일본의 모닝구무스메 덕후들은 여자 아이돌의 인기가 오래 지속되기는 어려운 것으로서, 모닝구무스메가 10년 넘게 활동하는 것도 대단한 것이라 말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팬이 모닝구무스메를 보는 관점은 다르다.

한국사람으로서 나는 모닝구무스메를 일본 대중문화의 인프라로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모닝구무스메의 한국팬으로서, 모닝구무스메 활동 시기를 크게 3 부분으로 구분하고 있다.

◎ 대중 아이돌 시기 (1997년~2002년)

◎ 기업형 아이돌 시기 (2003년~2006년) : 5기 멤버,6기 멤버 위주로 팀 개편

◎ 문화 사절의 시기 (2007년~2010년) : 8기 중국 멤버 활동기간


(1) 모닝구무스메의 대중 아이돌 시기(1997년~2002년): 1기 멤버~4기 멤버

모닝구무스메는 1997년에 결성된후 차근차근 정상에 올라간다.

데뷔 싱글이었던 "모닝 커피"는 오리콘 차트 6위를 기록했고, 3번째 싱글인 "다이테 홀드 온 미"로 오리콘 차트 1위를 하면서 홍백전에 첫 출장한다.

모닝구무스메는 여러차례 위기를 겪기도 하지만, 싱글인 러브머신이 180만장을 넘는 밀리언 셀러를 기록하고, 코이노 댄스사이트(120만장), 러브 레볼루션(98만장), 더 피스(68만장)가 계속해서 히트를 치게 된다.

게다가 이들의 3번째 앨범(싱글이 아닌 정식 앨범) 러브 파라다이스는 86만장,
베스트 앨범은 2백만장을 넘게 팔아치운다.

90년대 후반부터 2002년 무렵까지가 걸그룹 아이돌로서 모닝구무스메의 전성기이다.




(2) 모닝구무스메의 기업형 아이돌 시기(2003년~2006년):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모닝구무스메는 2002년 하반기에 팀을 개편한다.

이 과정에서 모닝구무스메의 주축 멤버들이 바뀌게 되는데, 이것은 "헬로 프로젝트 아마게돈(하로마게돈)"이라 불리게 된다.

*헬로 프로젝트 : 모닝구무스메가 소속되어 있는 프로젝트

이 시기에 모닝구무스메는 인기가 많았던 1기~4기 멤버가 아니라, 5기와 6기 멤버 위주로 팀을 구성하는데, 모닝구무스메 덕후들의 반발을 불러오게 된다.

모닝구무스메 덕후들이 팀개편에 강력 반발하면서 모닝구무스메의 대중적 인기는 하락하기 시작하고, 음반 판매량은 점점 떨어지기 시작한다.

모닝구무스메는 이제 끝났다, 모닝구무스메의 해산이 멀지 않았다 등등의 이야기가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져 나온것도 이 무렵이다.

그런데 이 시기에 모닝구무스메 소속사는 회사가 확장되며, 모닝구무스메를 주축으로 헬로 프로젝트가 확대되고 모닝구무스메는 헬로 프로젝트의 본체(本體)라 불리게 된다.

간단히 말해서, 모닝구무스메가 헬로 프로젝트로 확대된 것이 이 시기이다.

그리고 모닝구무스메는 광고 CF외에 여러가지 방식으로 기업과 관련을 맺거나 문화 캠페인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 일본 여자 축구 협회의 협조 요청으로 모닝구무스메는 여자 풋살 축구팀을 만든다.(2003년)

모닝구무스메가 속해있는 갓타스 브릴헨테스 풋살 축구팀은 일본 여자 국가 대표팀인 나데시코 재팬과 교류하면서, 여자 풋살 축구 활성화에 앞장서게 된다.

우리나라의 여자 축구가 초기 단계이며, 여민지, 지소연과 같은 스타를 발굴하려 애쓰고 있는데, 모닝구무스메가 2003년부터 여자 축구를 했다는 것은 주목할만한 부분이다.

그리고 2011년 일본 여자 축구 대표팀 나데시코 재팬은 여자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기적을 만든다.

▼모닝구무스메가 직접 뛰었던 여자 풋살 축구팀, 갓타스 브리란치스



◎ 모닝구무스메 소속사인 UFA(업프론트 에이전시)는 회사를 확대 개편하고, 계열 레코드 회사인 Zetima,Hachama,피콜로 타운을 합병한다.(2004년)


◎ 모닝구무스메는 라쿠텐 그룹의 프로야구단 응원가로 채택된 "맨 파워"를 정식 싱글로 발표한다.(2005년)

라쿠텐(楽天) 그룹은 미국의 아마존닷컴과 함께 세계 10대 인터넷 쇼핑몰 기업중 하나로서, 프로 축구팀과 프로 야구팀, 증권회사를 자회사로 갖고 있는 기업이다.

◎ 모닝구무스메 프로듀서인 츤쿠는 TNX 레코드 회사 사장이 된다.(2006년)

◎ 모닝구무스메는 일본 정부의 환경부 장관 코이케 유리코(小池 百合子)를 만나고, 환경 문제에 대한 이벤트를 열기 시작한다.(2004년)

그리고 모닝구무스메는 환경 문제와 지구 온난화 문제를 어필하는 모닝구무스메 문화제를 연다.(2005년)

2007년에도 모닝구무스메는 지구 온난화 문제와 관련해「”뜨거운 지구를 식힌다. “문화제2007 in 요코하마」를 개최하는데 일본 정부의 환경부 장관과 요코하마 시장도 참석한다.

우리나라도 저탄소 녹색성장 산업에 관심이 많으며,환경 문제와 관련해서 여러모로 애쓰고 있는데, 일본의 모닝구무스메가 몇 년 앞서서 환경 문제 개선이나 지구 온난화와 관련된 이벤트를 했다는 것은 주목할만하다.

중요한 국제 행사인 G20 정상회의가 우리나라에서 열리는데, 120여개의 글로벌 대기업의 CEO가 비즈니스 서밋을 개최한다.

그런데 120개 대기업 경영자가 참석하는 G20 비즈니스 서밋의 4대 의제중 하나가 녹색 성장 촉진이다.

참조 뉴스 : G20 비즈니스 서밋 의제는 무엇?


◎ 2007년에 구글은 동영상 사이트인 유튜브(Youtube)를 인수 합병한다.

유튜브가 인기를 끌면서 비슷한 동영상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들은 타격을 받게된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동영상 UCC 사이트인 엠앤캐스트가 2009년에 서비스를 중단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2006년에 만들어진 니코니코 동영상(ニコニコ動画)이 유튜브 못지 않은 인기를 끌고 있다.

구글의 유튜브가 전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할무렵, 모닝구무스메는 모튜브(MouTube)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모튜브(MouTube)와 유튜브(YouTube)는 웬지 비슷하다는 느낌인데...모튜브는 시청자가 만든 UCC동영상을 갖고 모닝구무스메가 웃고 떠드는 프로그램이었다.

내가 볼때는 모튜브가 유튜브에 대한 일본 사람들의 관심을 일본의 동영상 사이트로 유도하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참조 : 엠엔캐스트, 동영상 서비스 중단…왜?

참조 : 日 UCC ‘니코니코 동화’ 동영상 재생횟수 100억회 돌파

일본의 덕후들은 모닝구무스메가 자기나라 아이돌이니까, 기업형 아이돌로서의 모닝구무스메를 잘 느끼지 못하는것 같다.

그러나 한국 팬 입장에서 보면 모닝구무스메는 기업 홍보나 문화 트렌드와 관련해서는 틈만 나면 끼어드는 경향이 있다.

걸그룹 아이돌에 불과한 모닝구무스메가 일본의 문화 흐름과 트렌드를 주도한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모닝구무스메는 대중 문화 트렌드와 관련해서 국민 아이돌로서의 역할, 기업형 아이돌의 역할을 하는것으로 보인다.


(3) 모닝구무스메 문화 사절의 시기(2007년~ 현재)

모닝구무스메는 2007년에 중국 멤버가 2명 가입한다.

일본의 덕후들은 모닝구무스메가 아예 망하게 되었다고 난리를 친다.

아니나다를까 중국 멤버가 2명이나 가입한 모닝구무스메의 인기는 추락해버리고, 많은 오타쿠들이 모닝구무스메에 등을 돌린다.

모닝구무스메의 몰락, 모닝구무스메의 자폭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것도 이 시기이며, 음반 판매량은 굴욕적인 수준으로 떨어진다.

그러나 국민 아이돌이기 때문에 이런 일도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 일본과 중국은 사이가 매우 안좋으며, 국민 감정도 최악의 대립을 보이고 있다.

모닝구무스메에 중국 멤버가 들어갔다는 것은, 이와 같은 국민감정을 조금이나마 해소할려는 의도였다고 생각한다.

모닝구무스메가 중국에 진출하기 위해서, 중국 멤버를 2명이나 모닝구무스메에 가입시켰을 것이라 해석하는 덕후도 있다.

그러나 일본이 미국에 이어서 세계 2위의 음반 시장인데, 굳이 모닝구무스메가 중국진출을 하려 했을지는 의문이다.

게다가 중국이나 한국이나 음반 불법복제가 심해서, 중국에 진출해도 이익을 내기란 쉽지 않다.

내가 볼때는 중국 진출보다는 모닝구무스메가 문화 사절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일본 사람들에게는 중국과 친하게 지내자...중국 사람들에게는 중국과 친하게 지내고 싶다...라는 메시지를 던진것 같다.

다음 사진에서 오른쪽 세번째와 네번째 멤버가 중국 멤버이다.(중국 멤버는 모닝구무스메에서 3년 정도 활동했으며, 현재는 모닝구무스메를 졸업했다)



최근에는 모닝구무스메가 일본에 진출한 우리나라 연예인을 알리느라 열심이다.

모닝구무스메에는 한류 오덕후 멤버가 한명 있기는 하지만, 이제는 다른 멤버들까지 가세했다.

리더인 다카하시 아이는 빅뱅의 팬이라면서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빅뱅의 음악을 틀기도 하고, 다나카 레이나는 가라오케에서 카라의 노래를 부른 것이 블로그를 통해 알려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이 한국의 K-POP을 일본에 알리느라 노력한 것은 알려지지 않고, 반일감정이나 혐한 감정에 이용되는 경우도 있는것 같다.

우리나라에 반일 감정이 있는것처럼, 일본에도 한국을 싫어하는 혐한 감정이 있다.

만약에 우리나라 연예인중에서 나는 일본이 좋다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매장당할 수도 있다.

일본에서도 한국을 좋아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하기는 쉽지 않다고 한다. 혐한 감정을 갖고 있는 일본인들에게 매도당할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닝구무스메는 비난받는 것에 개의치 않는다. 국민 아이돌이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에는 서로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우호 관계는 아시아의 중요한 원동력이라는 것을 한국 사람도 알고 있고, 일본 사람도 알고 있다.

모닝구무스메는 비난받는다거나 음반판매가 참패를 하는 일이 있어도, 국민 아이돌이자 문화 사절로서의 역할을 하는것으로 생각한다.

모닝구무스메는 우리나라를 방문해서 악수회를 했었으며, 내한 콘서트를 하기도 했었다.



모닝구무스메는 공주같은 존재가 아니다.

이들도 다른 일본 걸그룹과 마찬가지로 비키니 사진도 촬영하고, 므흣한 망상과 개그의 소재가 되기도 하며, 각종 구설수에 휘말리기도 한다.

그러나 국민 아이돌이라는 자존심은 모닝구무스메 1기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 내려오는 것으로 보인다.